2000·2007 정상회담

걸어온 길

  • 660

    남북 당국 대화

  • 267

    정치 회담

  • 153

    인도주의 회담
    (이산가족 상봉,
    대북 지원 등)

  • 59

    사회·문화 회담

  • 49

    군사 회담

  • 132

    경제 회담

남과 북은 오랜 분단의 시간 동안 많은 갈등을 겪었으나,
분단의 비극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대화와 교류 노력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1953년 6·25 전쟁 휴전 이후 다시 대화를 시작한 1971년부터 2018년 6월 4일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북 당국은 공식적으로 660회 만났습니다.

상호간의 신뢰를 쌓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남북 간 대화 노력은 50년 남짓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은 남북이 적대와 대립 속에서도
유지해온 대화의 여정 위에 세워진 굵직한 이정표입니다.

1970년대
1960년대까지 국제적 냉전의 영향 아래 대화에 나서지 못했던 남과 북은 1970년대 들어 국제사회에 화해·협력 분위기가 도래하자 대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최초의 남북대화는 1971년 8월 20일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의 파견원 접촉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72년 8월부터 1973년 7월까지 이산가족 주소와 생사확인 등 5개항을 의제로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이 모두 일곱 차례 열렸습니다.
한편 1972년 5월 남북 대표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회담을 가진 결과, 분단 이후 최초 합의문서인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남북조절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성명에서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3원칙을 비롯하여 상대방 중상 비방 중지, 군사충돌 방지 조치, 서울-평양 상설 직통전화 설치 등을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냉전체제를 기반으로 한 적대적 대결구도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남북관계 진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1980년대
1980년대 초반 남북관계는 위기를 겪었으나 중반에 들어서면서 남북대화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경제·체육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됐습니다.

1984년 9월 18일 정부는 북측의 대남 수해물자 제공 제의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분단 이후 최초로 이뤄진 인도적 지원 합의였습니다. 또한 같은 해 11월 남북경제회담을 시작으로 적십자회담, 국회회담 예비접촉, 체육회담 등 일련의 남북회담이 열렸습니다.

1985년 5월 27일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이 열렸습니다. 이어 9월 20일부터 나흘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서울·평양 동시 교환 방문이 진행되면서 남북 주민들의 교류가 이뤄졌습니다.
1980년대에 남과 북은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도 대화를 지속했으며 이전 시기에 비해 대화 채널을 다양화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1990년대
1990년대 초 탈냉전의 흐름에 힘입어 남북관계는 큰 진전을 이뤘습니다. 1990년 9월 분단 이후 첫 총리급 회담인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고 이후 여덟 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1992년 2월에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됐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상호체제 인정·존중, 정전상태의 평화상태 전환 노력 등을 합의했습니다. 아울러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등 3개 분야의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채택됐습니다.

이어 남북은 1994년 7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으나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2000년
2000년대 들어 남북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분단 이후 최초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습니다. 평양에서 만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 노력, 경제 및 사회·문화 교류 확대 등을 다짐한 <6·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했습니다.
두 정상은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점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통일문제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습니다. 즉, 남북한이 당장 제도적·법적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현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교류 협력을 통해 점진적·단계적으로 사실상의 통일을 실현해나간다는 데 합의한 것이었습니다.
2007년
2007년 8월 8일, 남북은 <남북정상회담>이 그 해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될 것이라고 동시에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인 8월 18일 북한이 수해로 인해 회담 일정을 연기할 것을 요청해 와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리게 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회담에서 정전체제의 종식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직접 관련된 3자 혹은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 내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협력하여 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한 정치, 군사, 경제,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사업들을 벌여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정상회담 결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이 채택됐습니다. <10·4 선언>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세부 사항에 대한 구체적 이행방안을 담은 합의서였습니다.
2017년
“우리는 이미 평화로운 한반도로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남과 북은 두 선언을 통해 남북문제의 주인이 우리 민족임을 천명했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보장을 위한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경제 분야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의 협력 사업을 통해 남북이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자고 약속했습니다. 남과 북이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 맺은 이 합의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절실합니다. 남과 북이 함께 평화로운 한반도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 중에서-
2018년
2018년 4월 27일,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습니다. 평창에서 움튼 한반도 평화의 씨앗은 정상회담이라는 봄꽃으로 피어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매우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습니다. 하루짜리 회담이었지만 그 내용은 알찼습니다. 오전 회담은 100분 넘게 이어졌고, 도보다리 산책에서 시작된 정상 간 독대는 40여분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두 정상은 논의한 내용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담아 직접 발표하였으며,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한반도 평화시대의 개막’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꼭 한 달 뒤인 5월 26일, 남북의 정상은 판문점에서 다시 마주 앉았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긴급한 현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두 번째 회담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 만남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다시 한 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고,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친구 간의 일상적 만남처럼 이뤄진 두 번째 정상회담, 정례적 정상회담과 함께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