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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 [‘2018 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⑥ ‘압축 체제인정’ ‘압축평화’ ‘압축성장
- 글: 배기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

정책브리핑 |2018.4.13

 

우리의 안보현안에서 항상 핵심이 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이제 거의 30년이나 된 만성적인 문제다. 북핵문제를 이렇게 만성적인 상태로 만든 한반도의 전쟁상태, 나아가 민족분단은 이제 70년이나 된 아주 고질적인 문제다. 불치의 병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악화된 북핵문제, 나아가 전쟁과 분단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1일, 남측예술단이 평양에서 남북의 평화협력을 기원하며 ‘봄이 온다’는 주제로 공연을 했다. 그 전에 북측의 예술단이 평창겨울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을 했고,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부위원장이 특사단으로 남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답방으로 정의용 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한 우리 특사단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고 남북정상회담을 4월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생각하지 못한 봄바람이 갑자기 불어왔다.

불과 6개월 전 한반도는 엄동설한이었다. 북한은 작년 9월 3일, 6차의 핵실험 끝에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고, 11월 29일에는 미국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호 시험에 성공했다. 이에 대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유엔안보리는 제재결의안 2375, 2397호를 통해 북한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봉쇄했다. 1994년 클린턴 정부시기에 검토된 적이 있던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선제폭격론이 참수작전과 더불어 2015년부터 다시 거론됐다. 2017년에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말 폭탄을 쏟아내며 ‘코피작전’을 거론하기도 했다. 선제공격, 예방전쟁, 전면적 핵전쟁의 위기가 감돌았다.

지난해 우리는 눈보라가 치는 엄혹한 겨울의 한 가운데 있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유엔의 대북제재가 극한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라는 말처럼, 궁하고 궁한 때에 변화가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관된 대북제안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 북한의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역사의 대변환을 꾀했다.

핵·미사일을 포함한 북한문제는 결국 ‘북한과 미국’, ‘북한과 남한’이라는 두 개의 관계를 풀어야만 해결되는 문제다. 3월 5일 우리 특사단이 김 위원장을 만나 합의한 내용의 핵심은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라는 것이다.

3월 26일 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남조선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답해 와서 평화·안정의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실현을 위해 단계적, 동보(동시)적 조치를 취한다면 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은 체제보장과 비핵화를 ‘단계적이고 동시적’으로 진행하자고 주장하고, 우리는 ‘일괄타결과 단계적 실행’을 주장하며, 미국은 ‘일괄적이고 단기적’인 해법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동시적, 단계적, 단기적’이라는 시간과 관련해서는 ‘압축’이라는 개념을 고려할 수 있다. 또 체제보장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체제인정을 통한 평화와 성장’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압축적 비핵화와 압축적인 평화, 압축적인 상호인정과 압축적인 성장이라는 개념이다. 

우선 4월 정상회담은 역대 정부의 합의를 압축적으로 계승하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과 함께 2000년의 6·15공동선언, 2005년 6자회담의 9·19합의, 2007년의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등이 남북관계 발전의 토대인 것이다. 이 합의들의 공통점은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위에서 평화를 이루고 번영을 도모하며,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적이고 점진적으로 통일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역대 북미간의 합의에는 1994년의 제네바합의, 2000년 12월의 북미공동코뮤니케, 2005년 9월의 9·19공동성명이 있다. 이들 합의문에 공통된 것은 북한이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북한이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국교를 수립하며, 평화체제를 수립한다는 것, 그리고 국제사회가 각종 경제제재 해제와 경제지원으로 북한경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오는 4월의 남북정상회담과 5월로 예측되는 북미정상회담의 공통적인 주제는 결국 ‘압축적인 체제인정’과 ‘압축적인 평화’ 그리고 ‘압축적인 성장’이다. 핵·미사일 개발, 즉 체제안전을 위해 오랫동안 경제를 희생시킨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의 단계’를 압축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체제인정과 평화와 성장의 프로세스’도 압축해야 한다. 남북 간의 기존 합의를 존중해 평화공존을 제도화하고, 북미 간에 국교를 수립하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에 더해 북한이 압축적이고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북한에게 줄 때 비로소 일괄적이고 단계적이며 단기적인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때가 됐을 때 우리는 ‘가을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