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정상회담 이후 ‘신북방정책’

정책브리핑

2018-07-05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1~24일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다. 6월 22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정상회담 결과, 양국 정상은 서비스·투자 FTA 체결 협상의 조속한 개시, ‘9개 다리(가스 산업, 철도, 항만 인프라, 전력, 북극항로, 조선, 일자리 창출, 농업, 수산)’의 분야별 투자 프로젝트 수립 및 이행 관리를 위한 ‘9개 다리 행동계획’ 수립, 시베리아 대륙횡단철도망(TSR)과 한반도 종단철도(TKR) 연결 관련 공동연구와 기술·인력 교류를 통한 양국 유관·연구기관 간 협력 지속 등을 골자로 하는 총 32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신북방정책과 한·러 정상회담 의미

문재인 정부는 러시아를 비롯한 탈소비에트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해 해양과 대륙을 잇는 가교국가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하며, 한국경제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목표 하에 과거 ‘북방정책’의 진화된 버전으로서 ‘신북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작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3차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북방정책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특히 러시아와 한국 간에는 ‘9개 다리’(9-Bridge), 즉 9개 우선분야를 중심으로 동시다발적 협력을 이뤄나갈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6월 18일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신북방정책의 전략과 중점과제’, 이른바 ‘신북방경제협력 로드맵’을 확정하고 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한러 정상회담은 최근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공동의 이해에 기초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번영을 위한 한국과 러시아의 역할을 재확인(공동성명 25항)한 것은 물론, 신북방정책에 입각해 양자 경제협력 확대와 남북러 3자 경제협력 추진(공동성명 13~15항)을 위한 모멘텀을 확보했다는 데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밀히 연관돼 있다. 최근 남북 및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 합의로 요약되는 한반도 정세 변화는 러시아와의 양자 경제협력 확대는 물론, 그동안 구상으로만 존재했던 남북러 3자 경제협력 추진 가능성을 제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남북 및 북미 간 정치적 신뢰 강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장기적으로 동북아에서 냉전의 유산인 두 개의 전략적 트라이앵글(한미일·북중러)을 대체하는 다자안보체제를 필요로 할 것인데, 여기서 한·러와 남·북·러 3자 경제협력은 이를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즉, 그동안 동북아 경제협력의 물리적 장애물이었던 북한, 그리고 서로 다른 삼각동맹체제에 묶여있던 한국과 러시아 간의 긴밀한 양자·다자경제협력은 다른 강대국들 간 지정학적 갈등을 완화하면서 동북아에서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신질서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신북방정책의 향후 과제

신북방정책이 이번 한러 정상회담을 통해 양자 및 3자 경제협력의 모멘텀을 확보했다면, 향후 어떤 시급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는가?

첫째,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 진전에 따라 대북제재가 단계적으로 완화돼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불가역적으로 만드는 첩경은 정치적 신뢰 강화와 함께 경제협력 심화, 특히 연계성 강화다. 그런데 신북방정책이 중점추진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초국경 경제협력, 철도 연결, 가스관 건설, 전력망 연계 등 남북러 3자 경제협력 프로젝트는 대북제재 완화 없이는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둘째, 민간의 주도적 참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금융지원이 활성화돼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민간을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닦는데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현지 진출 또는 사업 확대를 희망하는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금융지원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바와 같이, 기업이 공동 투융자 플랫폼과 극동 금융협력 이니셔티브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후속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또한 신북방경제협력 로드맵에 포함된 글로벌 인프라 펀드(GIF) 확대, 국제금융기구와의 협력 등을 추진하면서 남·북·러 3자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남북협력기금을 적절히 활용해야 할 것이다.